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이라는 단어는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꽤나 친숙한 단어이다. 학교에서 교과목으로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쓰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시스템’, ‘침대는 과학입니다’, ‘과학적 접근’ 등, 대단한 기술이 쓰인 제품이나, 체계, 혹은 ‘첨단이며 아주 대단한 척 보이려는’ 몇몇 제품들의 광고에서 ‘과학적’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리도 친숙하게 쓰고 있는 ‘과학’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 중의 하나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그렇게 부르기에는 더 광범위하고 높은 그 무엇인가인데, 콕 집어서 뭐라고 말하기가 참 애매하다.
필자는 고등학생 시절 동일한 주제로 친구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글을 써 본 적이 있다. 그 때 나누었던 의견들은 우리 나름대로의 생각이었기 때문에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그 때의 생각들은 내가 생각하는 과학의 개념에 대한 바탕이 되었다. 나는 이 생각을 토대로 과학이란 무엇인지 설명해보려고 한다. 먼저 논의하고자 하는 과학의 명확한 범위를 설정함과 동시에 과학이라는 개념의 틀을 잡고, 다음으로 공학과 과학을 비교하면서 좀 더 명확하게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과학이라고 하면 크게 넓은 범위에서의 과학과 좁은 범위에서의 과학, 이 두 가지의 개념이 존재한다. 좁은 범위의 과학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학, 천문학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소위 ‘자연과학’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보통 과학이라고 하면 좁은 범위의 과학을 칭하는 경우가 많다. 넓은 범위의 과학은 일반적으로 일컫는 과학인 자연과학을 포함해서 인문과학, 사회과학 등 다른 학문들도 포함한다. 이때의 과학은 모든 사람이 객관적인 방법으로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얻어진 ‘지식의 체계’이며, 주로 철학이나 종교, 예술 등과 구분 짓는 개념으로 쓰인다. 과학을 탐구하는 것은 지식의 체계를 쌓아가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진리와 법칙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는 여기서 좁은 의미의 과학, 즉 순수과학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과학이라는 것이 물화생지의 자연과학, 그리고 나아가 수학을 포함하는 개념이며, 과학이 무엇인지를 더 확실히 정의하기 위해서는 좁은 범위에서 면밀히 살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의 개념에 대해 더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공학과 과학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과학은 쉽게 말하면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학문’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해가 뜨고, 달이 기울며, 물은 밑으로 흐르고, 물질은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런 자연 현상에서 신비함을 느꼈다. 어떤 원리에 의해서, 어떤 힘에 의해서 자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서 사람들을 ‘자연을 탐구’하고, 얻어낸 여러 데이터를 통해 자연계를 움직이는 ‘법칙’을 하나씩 찾아내었다. 이 과정에 있는 모든 탐구 활동, 그리고 그 결과의 기술이 과학이라는 것을 이루는 것이다. 과학을 함으로써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세계의 진리를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과학은 자연을 관찰하고 탐구하여 보편적 진리를 얻어내는 학문과 그 과정 전체를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의 여러 하위 분야들의 속성을 살펴보면 과학이라는 개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먼저, 물리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여러 물체들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물체의 운동 양상을 통해 작용하는 힘을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힘이 존재하는지를 실험을 통해 알아낸다. 이 결과로 얻어낸 법칙은 세계의 진리를 나타내는 하나의 식이나 표현이 되는 것이다. 물리가 미시적․거시적 관점 모두에서 자연 법칙을 발견한다면 화학은 주로 분자 단위의 미시적 세계에서 분자들 사이에 어떤 상호작용이 일어나는지, 그 상호작용은 어떤 힘에 의해 일어나는지를 기술한다. 그리고 그 결과들이 어떤 일반적인 양상을 띠는지를 통해 법칙을 도출해낸다. 생명과학은 처음에는 박물학에서 시작한 학문이었다. 생물들을 관찰하여 생명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고, 생명체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의해 생물을 분류하였다. 최근의 생명과학은 비단 분류학뿐만 아니라 세포 단위에서 생태계 단위까지 범위를 넓혀 각 단위들이 어떻게 구성되어있고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관찰․기술하여 생명체에 대한 지식 체계를 쌓아가고 있다. 지학과 천문학은 지층과 별빛을 연구하여 수 억 년에 걸친 변화 과정을 알아내며, 나아가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해 논하며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하는 진리를 알기 위해 탐구한다. 이렇듯 순수과학에 속하는 여러 하위분류의 과학들은 문제 설정과 관찰을 통해 결론을 얻어내고, 그를 통해 진리에 한발자국 더 가까워지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과학과 종교를 비교한다. 과학은 체계적이고 명확하며, 종교는 비체계적이고 미신적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비교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본격적으로 세계의 중심이 되기 전에는 종교가 가장 근본적인 원리이자 진리이며 사상이었다. 불과 몇 백년 전에는 과학이 이단이고 종교가 진리였으며, 과학이란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불순한 학문이었다. 즉 그 시대에 어느 것이 주가 되느냐에 따라 진리라고 일컬어지는 가치가 달라진 것 뿐이다. 과학과 종교 모두 체계적인 지식의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술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법을 가지고 진리를 찾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한다. 다만 그 중심에 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게다가, 과학과 종교가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굳이 여기서 차이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
과학과 공학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단순히 단어로만 따지더라도 science와 engineering으로 다르며, 떠오르는 이미지도 확연히 다르다(시약을 섞는 과학자와 몽키 스패너로 너트를 조이는 공학자처럼). 공학은 과학과 어떻게 다른 걸까? 다시 한 번 과학자와 공학자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과학자는 미지의 시료의 성질을 알고 싶어 한다. 다른 여러 시료들과 섞어 데이터를 얻고, 많은 장비를 이용하여 물질을 분석한다. 결국에는 그 물질이 어떤 물질인지 알아낸다. 이처럼 과학은 '탐구와 발견'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과학자가 알아낸 이 물질이 알루미늄이라고 하자. 공학자는 알루미늄으로 합금을 만들면 가볍고 강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강하고 가벼운 합금을 만들기 위해 여러 번 조성을 바꾸어 합금을 만들고, 결국 성공하여 그것을 상용화한다. 여기서 공학은 '응용과 적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공학이 발전하기 위해 과학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구석기시대에 인간이 다양한 모양과 용도의 뗀석기를 만든 것은 공학일지는 몰라도 과학은 아니다. 다만 돌의 성질과 가해야하는 힘의 크기를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으면 된다. 말하자면 과학과 공학은 독자적인 출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있다면 공학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뗀석기를 만드는 데에 힘과 가속도의 명확한 관계는 필요 없지만, 그것을 안다면 좀 더 적은 시행착오를 통해 더 완벽한 기능의 뗀석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공학이 발전하게 되면, 그에 따라 과학도 함께 발전할 수 있게 된다. 공학에 의해 만들어진 여러 개념들, 도구들이 과학의 새로운 탐구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즉, 과학과 공학은 출발점은 다르고 목표로 하는 점도 다르나 함께 발전해나간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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