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연극 ‘동 주앙’의 마지막 공연이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렸다. 극장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그 모양새에서 단단함과 화려함이 묻어나와 나도 모르게 연극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커진 듯했다. 극장 내부는 깔끔하고 현대적이었다. 3층의 객석으로 올라가 무대를 내려다보니, 작지만 특이한 모양의 무대가 보였다. 극장 자체가 작아서 3층에서 연극을 본다 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했다.
잠시 극장을 돌아보는 사이 불이 꺼졌고, “담배는 참 좋은 것입니다”로 스가나렐이 말을 시작하면서 연극이 시작되었다. 여자를 ‘사랑할’ 줄 모르고 ‘밝힐’ 줄만 아는 희대의 바람둥이, 동 주앙(Dom Juan). 그는 사랑은 물론이요 신도, 정의도 무시하는, 오직 2+2=4라는 산수밖에 믿지 않는 이단자이자 반항아이다. 결혼을 약속한 엘비르도 저버린 채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아버지의 말일랑 듣지도 않고, 화려한 말솜씨로 돈을 받으러 온 사람도 돌려보내는 그를 보는 그의 하인 스가나렐은 답답하기만 하다. 스가나렐은 천하의 바람둥이에 신도 믿지 않는 동 주앙을 못마땅하게 여겨 종종 동 주앙의 행동을 비판하곤 하지만, 동 주앙의 몇 마디에 곧 세상에서 제일가는 아첨꾼이 되고 만다. 그는 “마음을 감추고 혐오하면서도 아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줄거리를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정혼녀 엘비르가 버림받자 복수를 하려고 하는 그의 오빠들을 피해 여행길에 오른 동 주앙과 스가나렐은 예전에 동 주앙이 여자를 두고 벌인 결투에서 죽인 기사의 무덤에 다다르게 되고, 그 기사의 석상이 동 주앙의 저녁 식사 초대에 응하고 후에 동 주앙을 지옥으로 끌고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전반적으로 연극은 무척 재미있었다. 시간이 너무 잘 가서 연극의 3분의 2정도가 지난 줄 알았는데 연극이 끝나있었을 정도니까. 처음으로 연극을 본데다가, 나름 배우와 관객들 사이의 호흡도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팔랑팔랑한 천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무대 의상을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연기나 연출 면으로는 약간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배우들의 말이 너무 빨랐던 게 그 중 하나다. 화를 내거나 좋아서 흥분한 그런 장면이 아닌데도 말들이 대체적으로 빨랐다. 관객과 소통하고 좀 더 쉽게 다가가려는 차원에서 코믹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웃음에 치중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원작이 풍자극이니 웃기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게 맞기는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연극이라는 이미지에 약간 벗어나는 듯해서 아쉬웠달까. 그래서 살짝 허전한 느낌도 들었다.
연극의 내용에 대해서는 끝부분이 좀 아쉬웠다. 동 주앙이 지옥으로 끌려들어가는 장면이 마지막 장면이라는 것은 좀 충격적이었다. 그 뒤에 동 주앙이 지옥에서 빠져나온다던지 하는 다른 이야기들이 더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끝이었다니. 설마 원작이 이런 건가, 했었는데 진짜였다. 찾아보니 그게 몰리에르의 '탈출구'였다고 한다. 원초적 본능을 표출하는 동 주앙을 언제까지고 긍정하는 건 지나친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탈출구를 만들어 놓은 것이 그거라나. 만약에 몰리에르가 현대에 살았더라면 아마 좀 더 다른 결말을 만들지 않았을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지옥에 가서도 지옥에 있는 존재들을 실컷 놀리고서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다던지 하는 좀 더 ‘동 주앙스럽고’ 파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되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에 동 주앙이 지옥으로 끌려가면서, "너희들도 나를 이렇게 비난할 만큼 떳떳할 수 있냐, 나중에 지옥에서 보자" 라고 하는 부분에서, 다른 등장인물들은 춤을 추고, 십자가로 서로의 머리를 내리치는 시늉을 하고, 바보처럼 돌아다닌다. 이런 행동들이 모두 풍자라고 생각된다. 결국에, 동 주앙처럼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가식적으로 숨기고 있는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동 주앙을 나무랄 이유가 없다는 뜻일까. 그리고 그 장면 후에 내레이션을 하며 등장하는 스가나렐. 그는 “마침내 동 주앙 주인님이 지옥으로 끌려갔고 모든 사람들은 기뻐했다. 단 한 사람 빼고. 내 돈!” 이렇게 말한다. 사실 앞부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아첨하는 불쌍한 기독교인'이라는 이미지였는데, 마지막에 동 주앙이 지옥으로 끌려갈 때 "내 돈!!"이라고 외치는 부분에서 결국에는 그도 속물적인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아첨을 한다’는 그 자체가 어쩌면 속물이라는 거니까. 앞에서 언급된 것들과 함께 보면, 결국 동 주앙이라는 연극이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풍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귀족이건, 평민이건, 모두 다 자신을 숨기고, 강한 자에게 아첨하고, 신이라는 존재조차 확실치 않은 존재를 믿는 그런 존재들이고, 그런 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본심을 숨기는 나약한 존재들을 비꼬는 동 주앙보다 못하다는 것을 몰리에르는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왜 동 주앙이 신부의 탈을 쓰게 되었는지는 이해가 안 간다. 그렇게나 다른 사람들을 비꼬고, 자신의 욕망과 이단아적 성질을 표출했던 그가 왜 ‘모두가 자신을 감추기 위해 이용하는’ 위선을 이용하는 건지. 이제까지는 최소한 위선자는 아니었던 그가 왜 이런 방법을 써야만 했을까? 그렇게나 큰소리 떵떵 치고 다니던 동 주앙도 기사의 망령은 무서웠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해도 신부라는 위선이 지옥으로 끌려가는 걸 막지는 못할 거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라곤 동 주앙이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것에 지쳤다, 라는 것밖에는 없다. 좀 더 명확한 표현이나 연출이 이루어졌다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등장인물 중에서는 엘비르의 오빠들이 기억에 남는다. 귀족인 그들은 엘비르를 저버린 동 주앙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동 주앙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그를 찾아 나선다. 게다가 그 중 한 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보 같고 어수룩한 모습만 보이고(“어버버버”를 연발한다던지), 다른 한 명은 동 주앙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이유로 그에게 복수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한다. 이 둘의 모습을 통해서 귀족들은 그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 고귀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우유부단하며 멍청하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나 같았어도 원수가 내 목숨을 구해준다면 참 난감하긴 할 것 같다. 그럴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진짜 귀족’같을까…?
마지막으로 총평을 내리자면, 동 주앙은 연극 초보자인 나에게는 무척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연극이었고, 그게 유명한 고전 풍자극이었다는 점에서는 하나의 교양으로써의 지식이 늘어나서 유익했다. 배경인 17세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고, 잘생긴 남자 하나가 여자 여럿을 ‘꼬시는’ 장면도 재미있었다. 마냥 척박할 것만 같았던 시대에 과감한 풍자극이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하지만 너무 빠른 대사 처리, 풍자극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웃음에 치중한 연출, 그리고 스토리상 어쩔 수 없는 ‘권선징악 엔딩’ 등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몰리에르의 이 희극은 비단 17세기만을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도 풍자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높은 자의 부패나 위선을 혐오하면서도 아첨하고, 자신이 높은 지위에 있다고 젠체하지만 실제로는 어수룩하고 때로는 바보 같으며, 욕망을 숨기려고 하나 숨기지 못하고, 위선을 일삼는 그런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풍자인 것이다. 어떤 한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 시대에만 통용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더불어 현대에 만들어진 풍자극을 하나 더 보게 된다면, 두 연극이 동일한 풍자 주체(어쩌면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에 대해서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는지, 연극의 결말(내가 아쉬워했던 부분인 만큼)은 어떻게 되는지 비교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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